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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5 17:27 1,59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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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灘川 이종학<소설가> 

어느 국영기업체의 신규직원 공채시험장.

  무려 300ː 1이라는 경쟁을 뚫고 1차 2차 전형을 거쳐 마지막 3차 시험장에 나온 응시자는 20명에 달했다. 이 중에서 3명의 합격자만이 채용의 행운을 누린다. 응시자들의 심신은 몹시 피로해 보였으나 눈빛은 의기 충천했다.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로다, 를 외치며 공채에 응한 젊은이들이다. 그 의지는 수백m의 절벽을 맨손으로 기어오르고도 남을 듯하다. 

  청년실업 문제가 위험수위를 넘어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고학력 실업자의 고용절벽이 장기화하자 3포니 5포니 하면서 자포자기 하는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는 암울한 현실이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국영기업체의 신규직원 공채 시험장은 젊은이들의 관심이 총집결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막바지 관문을 향해 사투를 벌이다시피 하는 응시 경쟁자 20명은 시험관들 앞에 나란히 앉았다. 당연히 고강도의 긴장감은 장내 가득 감돌았다. 여기저기에서 바늘구멍으로 숨 쉬며 목울대로 침 넘기는 소리가 팽팽한 공기를 흔들었다. 

  드디어 온몸에 쥐가 날 지경으로 잔뜩 긴장한 응시자들 앞에 시험지가 나누어졌다. 그 시험지에 쓰인 글을 읽고 간단한 독후감을 써내라는 너무나 의외의 출제였다. 밤을 낮 삼아 취업시험 준비에 몰두했던 예상문제와는 전연 엉뚱했다. 그리고 쉽고도 어려운 듯한 구석에 바로 트릭이 있다고 생각하니 모두가 써늘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고명한 선승이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선승의 수제자가 될 수 있을까 궁리를 거듭했다. 선승의 제자가 되는 길이 세속을 떠난 사미승들에게는 더없이 염원하는 목표이자 기쁨이었다.

  하루는 선승이 모든 제자를 불러 앉혀 놓고 한 가지 과제를 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새를 한 마리 죽여서 가지고 오너라. 제일 먼저 가지고 오는 사람을 내 수제자로 삼으리라.”

  선승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제자를 꿈꾸는 제자들은 휑하니 흩어졌다. 점심나절이 지나자 한 명 한 명 죽은 새를 손에 들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돌아왔다. 한 명만 빼고 제자들은 다 돌아온 셈이다. 하지만 선승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서로 눈만 멀뚱거리며 우두커니 서서 선승의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도 선승은 선방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드디어 해가 서산에 잔뜩 기울어서야 마지막 한 명의 제가가 돌아오자 선승은 그제야 승방 밖으로 나와 마당에 서성이는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잔뜩 긴장한 제자들을 죽 훑어본 선승은 손에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마지막에 돌아온 사미승을 보며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다른 사람들은 다 잡아온 새를 한 마리도 잡아오지 못하고 이렇게 늦게 왔는고?” 

  선승이 묻는 말을 들은 여러 제자의 시선이 일제히 그 사미승에게 꽂혔다. 된통 꾸지람을 들을 줄 알았다는 표정이 모두의 얼굴에 미소와 함께 어른거렸다. 

  빈손을 축 내리고 맥없이 서 있던 사미승은 주뼛거리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새를 잡으려고 했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은 없었습니다.” 

  선승이 엄한 얼굴을 하고 다시 물었다.

  “누가 따라다니기라고 했단 말이냐?”

  “그게 아니라 새를 잡으려고 하면 저 자신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미승은 머뭇거리며 더듬더듬 겨우 이렇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시험 끝을 알리는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초긴장 상태 속에서 40분 동안의 독후감 쓰기 최종 시험은 마감했다. 이제 합격자를 가리는 운명의 순간만이 남았다. 시험장을 나오는 응시자들의 허탈한 한숨 소리가 길었다. 온몸이 갑자기 이완되는 소리였다. 합격자는 5일 후에 발표할 예정이다. 응시자들에게는 이 5일이 다시 피 말리는 기간이 될 것이다. 시험지옥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발랄해야 할 웃음을 잃은 지 오래다.

  국영기업체의 신규직원 공채 시험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 다가왔다. 응시자들과 그 가족들은 이미 꼭두새벽부터 국영기업체의 정문 앞에서 초조한 몰골로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터였다. 오전 10시 정각 국영기업체 직원이 나와서 게시판에 백지 전지 한 장 크기의 게시물을 내다 붙였다.         

                        합격자 없음

  게시판 앞에 우르르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일시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낙담 아닌 절망의 몸짓이었다. 독후감 쓰기가 얼마나 어렵기에 정답자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혹이 팽배한 물결이었다. 시험관들이 원한 답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정답을 알고 싶다고 외쳤다. 그러나 잠자리가 머리를 바위에 부딪쳐 그 바위가 가루가 되기를 기다리는 꼴에 불과했다.

  무더위와 함께 달포 가량 지났다. 신규직원 공채에 300ː 1의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하고도 끝내 한 명의 합격자도 내지 못한 그 국영기업체가 공채 응시자가 아닌 3명을 특채(特採)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이어서 그 국영기업체의 공채 마지막 시험문제였던 독후감 쓰기의 답안지 내역에 대한 이상야릇한 입방아도 사람들을 열불나게 했다. 

  최종 응시자 20명의 독후감 답안지 내용은 양 방향으로 갈렸다고 한다. 첫째는 옛날 옛적 승방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한낮 설화에 불과하다. 지금은 성과지상주의 세상이다. 누가 보든 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능한 한 새를 많이 잡아오는 게 유능한 자이다. 그리고 공익을 위해 필요한 인재이다. 이런 주장의 응답자는 17명에 달했다. 3명에 불과한 다른 쪽의 답안지는 아주 정반대였다. 양심의 가책을 받는 부도덕한 행위는 어떤 이유든 저지르지 않아야 마땅하다. 또한 자연의 일부인 생물을 함부로 살생하는 비정한 짓도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한 것보다 심각한 세상임에도 바른 인재가 3명씩이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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