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전용사, "30여분만에 미그기 4대 격추" 70년 만에 공훈 상향…
작성자 정보
- News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6,966 조회
본문
한국전 참전용사인 로이스 윌리엄스. 사진은 윌리엄스 페이스북 사진 캡처.
6·25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11월 소련 전투기 4대를 격추한 미군 파일럿이 70년 만에 공훈을 재평가 받았다.
21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미 해군은 지난 20일 캘리포니아주(州)에서 기념식을 열고 한국전 참전용사 로이스 윌리엄스(97)에게 해군 십자훈장(Navy Cross)을 수여했다.
윌리엄스는 한국전쟁 기간이었던 1953년 5월 은성무공훈장이 주어진 바 있는데, 70년 만에 당시 무공을 재평가받아 해군에서 2번째로 높은 훈장을 받게 된 것이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성 장관은 "훈장 등급 상향 조정하기 위해 검토한 많은 제안 중 윌리엄스의 사례가 단연 두드러졌다"며 "그의 행동은 정말 특별하고, 더 높은 메달의 기준에 부합한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고 말했다.
델 토로 장관은 자유의 대가는 싸지 않다면서 "그것은 오늘날 군대에서 복무하고 있는 모든 장병들의 희생을 통해 이뤄진다"고 했다.
1952년 11월18일 당시 27세였던 윌리엄스는 한국전에 참전해 미 해군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F9F 팬서를 조종하고 있었다고 한다.
윌리엄스는 당일 북한 해안에서 100마일(약 161km) 정도 떨어진 동해상에서 작전 중이던 항공모함 오리스카니호에서 이륙해 다른 3명의 전투기 조종사와 함께 압록강 인근 상공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다 정찰대 대장 전투기가 갑작스럽게 기계적인 문제를 겪으며 호위기와 함께 기동대 본부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정찰 임무는 윌리엄스와 그의 호위 조종사만으로 수행했다.
그때 갑자기 소련의 미그-15 전투기 7대가 나타나 미 기동대 쪽으로 향하는 것이 확인됐다. 기동대 지휘관들은 윌리엄스 등에게 미그기와 미 군함 사이에 자리잡을 것을 명령했다.
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그기 4대가 윌리엄스 쪽으로 기수를 돌려 발포하기 시작했다고 윌리엄스는 전했다.
이에 윌리엄스는 미그기의 꼬리 쪽을 향해 대응 사격을 가하고, 소련 전투기 편대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윌리엄스의 호위기가 소련 제트기들의 뒤를 쫓았다.
당시 미군 지휘관들은 윌리엄스에게 소련군과 교전하지 말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윌리엄스는 2021년 미국 참전용사센터와 인터뷰에서 당시 지휘관들의 명령에 "저는 '교전했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소련 제트기들이 미군 제트기들보다 빨랐기 때문에 교전을 중단하면 그들이 자신을 따라잡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윌리엄스는 "당시 미그-15는 세계 최고의 전투기였다"고 말했다. 당시 윌리엄스가 탄 제트기는 공중전보단 공대지 전투에 더 적합한 비행기였다고 한다.
윌리엄스는 전투 도중 소련 전투기 6대와 혼자 맞서는 상황에 처했다. 그는 미그기들이 자신을 조준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방향을 바꾸고 왔다갔다 하면서 30분 이상 공중전을 벌였다.
그는 "저는 무의식적으로 움직였고, 훈련된 대로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소련 제트기 조종사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러나 때때로 그들은 실수를 했다"고 설명했다.
소련 제트기 한 대가 윌리엄스에게 날아오다 사격을 멈추고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윌리엄스는 자신의 발포에 소련 제트기 조종사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윌리엄스는 또 다른 미그기 한대를 산산조각냈다.
윌리엄스는 당시 전투 과정에서 F9F가 휴대한 20mm 기관포 탄약 760발을 모두 발사했다.
윌리엄스의 전투기도 전투 도중 방향타와 날개쪽이 파손돼 좌우 기동이 불가능해졌다. 이에 윌리엄스는 기동대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남은 소련 제트기 중 한 대가 그의 꼬리에 붙었다.
윌리엄스는 소련 제트기의 공격을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 비행으로 피했다. 이 시점에 윌리엄스의 호위기가 복귀해 소련 제트기를 뒤쫓으며 겁을 줬다.
윌리엄스가 우여곡절 끝에 기동대 인근에 도착했는데, 윌리엄스의 F9F를 미그기로 착각한 구축함들이 윌리엄스에게 사격을 가했다. 다행히 지휘관들이 재빨리 구축함들의 발포를 중단시켰다.
그는 가까스로 항공모함에 착륙했다. 해군 승무원들은 이 전투기에 263개의 총탄 구멍이 난 것을 확인했다.
그의 영웅적인 무용담은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대통령 면담까지 이뤄졌지만, 그의 공적은 기밀에 부쳐졌다.
이 사건이 미국과 소련 사이의 군사적 긴장을 높여 자칫 3차 세계대전에 불을 붙일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윌리엄스는 평생 이 얘기를 비밀로 하겠다고 맹세했고, 실제로 2002년 기밀이 공식적으로 해제될 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이후 참전용사 단체들이 윌리엄스의 훈장 등급을 높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70년 만인 지난해 12월 미 해군이 십자훈장 수여를 결정했다.
CNN은 "톰 크루즈가 태어나기 10년 전에 로이스 윌리엄스는 이미 현존하는 '탑건'이었다"고 전했다.